개요
재발 없는 다발성 경화증(MS)은 중추신경계를 침범하는 만성 자가면역질환으로, 그 형태는 다양하다. 재발 없이 점진적으로 진행하는 2차성 진행형 다발성 경화증(Non-relapsing Secondary Progressive Multiple Sclerosis, NP-SPMS)은 초기 재발완화형(RRMS) 이후 점차 악화 된다.
다발성 경화증의 진화: NP-SPMS의 출현 배경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 MS)은 염증성 탈수초질환으로, 중추신경계의 면역계 이상 반응으로 인해 신경세포를 감싸는 수초(myelin)가 손상되며 진행된다. 일반적으로 초기에는 증상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재발완화형(RRMS)이 가장 흔하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당수의 환자는 더 이상 뚜렷한 재발 없이 점진적인 악화를 보이는 2차성 진행형 다발성 경화증(SPMS)단계로 전환된다.
이 중에서도 NP-SPMS(Non-relapsing SPMS)는 재발이나 새로운 MRI 병변 없이 기능 저하가 서서히 진행되는 형태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환자는 더 이상 명확한 염증성 재발을 겪지 않지만, 신경학적 기능은 점진적으로 악화된다. 이는 염증보다 신경 변성과 축삭 손상이 주요 병태기전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론에서는 NP-SPMS라는 개념이 어떤 경로로 등장했는지, 기존 RRMS 및 SPMS와의 차이점을 간략히 조망하고, 본격적인 분석은 본론에서 다루게 된다. 특히 NP-SPMS는 환자 스스로도 증상 변화를 인식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기 진단과 전문의의 정밀 관찰이 핵심이다.
NP-SPMS의 병태생리와 치료적 난점
NP-SPMS는 RRMS 단계에서 염증성 활동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신경세포의 만성 손상과 기능 저하가 대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MRI 영상에서는 새로운 조영 증강 병변이 뚜렷하지 않으며, 뇌 위축이나 신경전달 속도 저하가 서서히 진행된다. 이러한 병태는 흔히 ‘조용한 진행(silent progression)’으로 불리며, 환자와 의료진 모두 질병 악화를 간과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치료 전략이다. 대부분의 질병 완화 치료제(DMT)는 RRMS 단계의 염증성 활동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NP-SPMS에서는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이는 현재까지도 치료적 사각지대로 남아 있으며, 일부 환자에게는 DMT의 중단이나 전환이 고려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토시트론, 시포니모드(Siponimod) 등 일부 약제가 NP-SPMS의 진행 억제에 긍정적인 결과를 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특히 시포니모드는 SPMS 중에서도 활동성이 없는 환자에게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어, NP-SPMS 환자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외에도 물리치료, 직업치료, 인지치료 등 다학제적 접근이 NP-SPMS 관리에 핵심적이다. 단일 치료제로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적 문제이기 때문에, 기능 저하를 늦추고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료진, 보호자, 환자가 함께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관리해야 한다.
조용한 진행에 대응하는 임상의 지혜
재발이 없는 다발성 경화증은 언뜻 보면 안정기에 접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조용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신경 기능이 악화되고 있는 상태일 수 있다. NP-SPMS는 바로 그러한 질병 양상을 대표하며, 단순히 증상이 ‘나빠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치료를 중단하거나 관찰만 하는 것은 큰 오산이 될 수 있다. 의료진은 환자의 기능적 변화, 균형 및 보행 능력, 인지기능의 미세한 저하 등을 면밀히 평가하고, 치료 전략을 지속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질병 진행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더라도, 속도를 늦추고 환자가 자율성과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치료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더불어 환자 교육도 매우 중요하다. NP-SPMS는 염증성 재발이 없기 때문에 질병 악화에 대한 인식이 늦어지기 쉽다. 환자 스스로 정기적인 기능 평가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증상이 없더라도 병원을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NP-SPMS는 '보이지 않는 진행'이라는 난제를 품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는 임상의 지혜와 환자의 협력이 치료 성패를 가르는 관건이 된다. 향후에도 이 분야의 연구는 더욱 활발해질 것이며, 질병 진행을 억제하는 새로운 치료법의 등장으로 NP-SPMS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